주말 아침,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남 창녕으로 가볍게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 머릿속에 창녕이라는 곳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추억을 더듬어보니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끝없이 펼쳐진 우포늪 생태공원과 산토끼 동산에 가서 신나게 뛰어놀았던 날도 있었고, 찬 바람 부는 계절에 가족들과 다 함께 부곡온천을 찾아 따뜻하게 몸을 녹였던 기억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각해보니 알게 모르게 창녕과 참 좋은 인연을 쌓아오고 있었던 셈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창녕은 생각보다 역사 유적이 가까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초록빛 고분군을 걷고, 만년교에 비친 둥근 반영까지 만나고 온 하루였습니다. 이날 다녀온 곳들을 차례로 소개해볼게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초록빛 봉분이 어우러진 교동 고분군 풍경

초록빛 언덕에 깃든 비화가야,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었습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이곳에는 5~6세기경 비화가야(비사벌)의 지배층 무덤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봉분이 온전히 남아 있는 무덤만 120여 기이고, 흔적까지 포함하면 300기가 넘는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습니다.

※ 고분 수와 유물에 관한 내용은 현장 안내판 및 해설을 참고했습니다.

날씨가 맑았던 덕분에 새파란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과 고분군의 싱그러운 초록 잔디가 선명하게 대비되어 풍경이 무척 근사했습니다.

교동 고분군은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서 천천히 걷기 좋았습니다. 우뚝 솟은 둥근 봉분들 사이를 걷다가 고개를 돌리면, 저 아래로 잔잔한 호수와 평화로운 시골 농경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다만 산책로에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키 큰 나무가 거의 없었습니다. 햇볕이 강한 계절에 방문한다면 양산이나 챙이 넓은 모자를 준비하는 게 좋겠더라고요. 바람은 시원해도 내리쬐는 볕이 꽤 따갑더라고요.

길을 건너 만나는 송현동 고분군은 교동 쪽에 비해 아담한 편이지만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참 색달랐습니다. 거대한 옛 무덤 언덕 바로 아래로 현대적인 건물과 도로가 이어져 있어서, 오래된 역사와 지금의 일상이 한자리에서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교동 고분군 산책로 풍경

창녕박물관의 지혜와 구수한 점심 한 끼

고분군 바로 옆에 자리한 창녕박물관도 들렀습니다. 마침 해설사님의 전시 해설 시간과 딱 맞아 함께 설명을 들으며 둘러봤는데, 그냥 지나쳤을 유물도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나하나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해설사님의 설명 중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당시 지배층의 무덤을 조성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생전에 자신이 묻힐 무덤의 터를 미리 마련했다는 설명이 무척 인상적으로 들렸습니다.

특히 눈길을 끈 유물은 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굽다리 접시’였습니다. 뚜껑을 덮어두면 평범한 덮개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놓으면 또 하나의 접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에도 이렇게 실용적으로 물건을 만들었다는 점이 신기하더라고요.

굽 부분에 뚫려 있는 구멍 모양을 보고 창녕 지역의 토기인지 다른 지역 것인지 구분한다는 점도 새롭게 배웠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니 배가 출출해져 송현동 고분군 인근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차돌 된장찌개에 계절 나물 반찬을 곁들여 먹었는데, 든든하게 한 끼를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녕 박물관 내부 유물 전시

세월의 더께를 마주한 신라 진흥왕 척경비

식사 후에는 창녕 읍내에 있는 만옥정 공원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학창 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국보 문화재,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를 직접 만나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듯하게 다듬은 돌이 아니라 거친 자연석 표면에 글씨를 새긴 형태라 멀리서 보아도 인상이 남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비석을 살펴보니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맞은 탓에 눈으로는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표면이 희미하게 마모되어 있었습니다. 글자가 많이 흐려진 모습을 보니, 이 비석의 내용을 확인하고 기록해 온 연구자들의 노력이 대단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옥정 공원 내 신라 진흥왕 척경비

영산 연지못의 고즈넉함과 무지개를 닮은 만년교

시내 유적을 둘러본 뒤 남쪽 영산면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름다운 돌다리로 이름난 ‘만년교’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리를 만나기 전, 바로 곁에 있는 ‘연지못’ 주변에 차를 대고 못 둘레를 먼저 걸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연못 규모가 꽤 널찍했고, 물 위를 거닐 수 있는 산책로 데크가 아주 잘 닦여 있었습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불기운을 품은 산세 때문에 고을에 화재가 잦자 ‘불은 물로 다스린다’는 생각에서 벼루 모양의 못을 처음 팠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신관조 현감이 못을 다시 깊게 파내고 하늘의 별을 본떠 다섯 개의 섬을 만들며 지금의 운치 있는 모습으로 정비되었다고 하네요. 봄날 벚꽃이 만발할 때나 은은한 야간 조명이 켜질 때 찾으면 물빛이 참 곱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지못을 지나 조금 걸어 내려가니 개울 위로 단아한 곡선을 그리는 무지개 돌다리, ‘만년교(보물)’가 나타났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개울 양쪽의 자연 암반 위에 화강암을 아치형으로 쌓아 올린 조선 후기 홍예교라고 합니다. 다리 정면에서 바라보니 반원 형태의 다리가 잔잔한 수면에 거울처럼 비쳐, 마치 물 위에 커다란 보름달 하나를 띄워놓은 것처럼 완벽한 원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돌과 돌이 서로를 지탱하며 수백 년 세월을 버텨낸 아치 구조의 아름다움에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눈에 담았습니다.

다리 입구에 서 있는 비석의 ‘만년교’ 석 자는 당시 13세 신동이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획 하나하나가 힘차고 당당해 다리의 멋을 한층 더 살려주고 있었습니다.

물에 비쳐 동그란 원을 그리는 만년교의 반영

입구에서 냉기가 느껴지는 영산 석빙고

만년교의 여운을 안고 차로 3~4분 정도 이동해 근처에 있는 ‘영산 석빙고’로 향했습니다.

조선시대에 겨울철에 얼음을 저장해 두었다가 봄과 여름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고 합니다. 현장 안내를 보니 땅을 깊게 파서 돌벽을 만들고, 바닥에는 물이 잘 빠지도록 배수 구조를 두었다고 합니다. 지붕 쪽에는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구조도 갖추고 있다고 하네요.

돌계단을 내려가 석빙고 입구 쪽으로 슬며시 다가가 보았는데요, 한낮의 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안쪽에서 서늘하고 차가운 냉기가 훅 불어와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대형 냉장고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 같았습니다. 전기도 없던 시절에 이런 방식으로 얼음을 보관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나오는 영산 석빙고 입구

창녕 나들이를 마무리하며

파란 하늘 아래 초록빛 고분군을 걷고, 만년교의 물그림자와 석빙고의 서늘한 냉기까지 경험하고 나니 기분까지 한결 가벼워진 하루였습니다.

이번에는 당일치기로 주요 유적 위주로 둘러보았지만, 억새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가을에는 화왕산 등산을 해보고 싶고 내년 봄에는 낙동강 변을 따라 노랗게 물든다는 유채꽃 축제도 꼭 보러 와야겠습니다.

하루 동안 꽤 많은 곳을 둘러봤는데도 이상하게 발걸음은 여유로웠던 하루였습니다. 다음에는 가을 창녕의 풍경도 만나보고 싶네요.


창녕 주요 방문지 위치 안내

  •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창녕박물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창녕대로 327

  • 신라 진흥왕 척경비 (만옥정 공원):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23

  • 영산 만년교 & 연지못: 경남 창녕군 영산면 동리 433
  • 영산 석빙고: 만년교에서 차로 약 3~4분 거리 (함께 묶어 둘러보기 좋은 동선입니다.)